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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4-19 07:46
[시론] 김정은의 권력 세습 축제가 끝난 뒤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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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대국' 상징 미사일 실패… 김정일 '유훈'에 묶여 있고,,
충분한 주민 배급 실현 못해 20억달러 지출, 자금도 고갈=韓·美와 대립각은 압박 초래… 또 다시 벼랑 끝 전술 가능성,,

북한은 4월의 봄 '축제'로 한동안 요란했다. 빈번한 충성맹세 집회, 김정은의 공식 권력 승계, 장거리 미사일 발사, 김일성 생일 기념행사, 대규모 열병식 등이 이어졌다. 1994년 7월 김일성 사망 직후 후계자 김정일의 체제 관리방식은 '근신'이었다. 그는 공개 활동을 자제하면서 김일성 애도 분위기를 유지하는 데 몰두했고, '3년상(喪)'이 지나자 권력을 공식 승계했다. 이번에 김정은은 달랐다. 권력을 다지는 일이 급선무였던 그는 지난 12월 말 탈상(脫喪)하자마자 최고사령관에 취임한 데 이어 금년 들어 군부대 방문 위주로 공개 활동을 빈번히 했으며, 4개월 만에 당·정·군의 최고 직위를 전부 차지했다.

그러나 이번 봄 '축제'를 통해 북한의 김정은 체제가 여러모로 문제가 있음이 드러났다. 우선 김정은은 권력 승계를 하면서 김정일보다 더 많은 아버지의 후광이 필요함이 확인됐다. 김정일은 '영원한 당 총비서' '영원한 국방위원장'이 된 반면 김정은은 당 제1비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 추대됐다. 다음으로 장거리 미사일(은하 3호) 발사도 2분 만에 공중 폭발로 끝나 망신을 당했다. 강성대국의 문패를 달겠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잃는 결과를 초래했다. 김일성 생일 100돌을 계기로 발표한 경제적 성과가 민생경제 회복과는 거리가 멀었고, 장거리 미사일 발사마저 실패하여 경제강국은 물론 군사강국 주장도 곤란하게 되었다.

또 하나 문제는 김정일 사망 이후 북한의 중요 정치 일정과 정책이 '유훈(遺訓)'에 의거해 추진된다는 점이다. 김정일은 올해 4월까지의 주요 일정과 정책 방향을 결정해 놓았을 가능성이 크다. 김정일이 살아 있었어도 김정은의 최고사령관, 당 제1비서, 국방위 제1(부)위원장 추대는 같은 시점에 이루어졌을 것이다. 장거리 미사일 발사 일정도 김정일 생전에 정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일 사후에 미·북 간에 '2·29 합의'가 이루어졌지만 김정은은 상황 변화를 고려하기보다는 '유훈' 관철을 고집했다. 이는 김정은 체제의 정책 결정이 수령(首領) 절대주의에 묶여 있음을 보여준다.

더 큰 문제는 5월 이후 북한 정세가 불투명해지고, 4월 '축제'의 몇 가지 후유증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우선 주민들의 불평불만이 증폭될 것이다. 4월 행사 때 전 주민을 대상으로 한 충분한 배급이 실현되지 못했다. 오히려 강성대국 거론으로 주민들의 허탈감만 키웠다. 5월로 넘어가면 춘궁기(春窮期)가 다시 온다. 그간의 정치행사로 방치한 민생대책은 새 지도자 김정은의 당면 과제가 된다. 또 통치자금의 고갈에 따른 부담도 크다.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8억5000만달러와 평양시 정비, 우상화물 건립·행사비용으로 10억달러 이상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20억달러는 북한의 연간 외화 수입 규모이다. 김정은이 통치하려면 측근들에게 경제적 보상을 하는 것도 중요한데 그의 통치자금 조달 능력은 미지수다. 더구나 김정은 체제는 외부로부터의 압박과 제재를 키웠다. 이명박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고, 미국과 합의를 깨면서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

북한은 다시 한 번 벼랑 끝 전술로 반전(反轉)을 도모할 가능성이 크다. 미사일 발사 실패로 손상된 체면을 살리고, 대선을 앞둔 한미의 대북정책 전환을 유도하며, 내부 긴장을 조성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 체제가 공식 권력 승계를 완료한 만큼 변화를 보일 것이라는 기대는 시기상조다. 김정일도 공식 권력 승계 이후 3~4년은 '군기 잡기'에 열중했으며, 신(新)사고·실리 강조 등 실용주의적 변화는 그 이후의 일이었다. 우리가 '축제'가 끝난 김정은 체제를 계속 경계해야 할 이유다.